2022. 7. 24. 07:33ㆍ영화 배경, 영화 제작, 영화 연기, 장르 이론
해외 영화의 역사와 특징
영화는 시대의 흐름에 따라 다양한 형태로 바뀌고 발전하게 되었고 새로운 표현기법이 제시되었습니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날 무렵에 이탈리아에서는 사실적이고 감동적인 영화들을 선보여서 관객들을 놀라게 했습니다. 로베르토 로셀리니 감독의 〈무방비 도시〉, 〈전진〉, 비토리오 데 시카의 〈자전거 도둑〉과 〈구두닦이〉, 루이지 잠파의 〈평화에 산다〉 등을 통해 새로운 표현 기법을 제시했습니다. 네오리얼리즘의 특징은 카메라와 현실 세계의 직접적인 만남에서 시작되었습니다. 1930년대의 영화가 계산된 극적 스토리를 전달해 왔다면 네오리얼리즘은 '영상'의 리얼리티를 추구하는 데에서 출발했습니다. 카메라가 파괴된 로마의 비참한 현실 생활을 있는 그대로 꾸밈없이 그대로 보여 줄 때, 작가가 느낀 현실에 대한 정치적, 사상적 입장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발전을 했습니다. 작가들은 여러 대상을 보면서 그 대상들의 상호 관계를 이해하려고 하였습니다. 단전 없는 현실이 계속되는 상활 속에서 최대한 사실처럼 나타내려고 노력하던 연출이, 그런 영화가 네오리얼리즘의 스타일이었습니다. 사실처럼 보이기 위한 롱테이크, 한 화면 속의 정경, 후경, 중경, 여러 대상물 들을 동시에 보여줄 수 있도록 딥 포커스를 활용을 했고요, 인위적인 세트 촬영을 거부하고, 로케이션 촬영을 선호했습니다. 그리고 비전문배우를 기용해서 사실성을 강조하는 것이 네오리얼리즘 영화의 특징이었습니다.
네오리얼리즘 영화 제작
영화 화면 구성에서 보자면, 뉴스영화, 기록영화적인 에피소드를 전개하는 스토리 중심의 영화 제작에서 탈피해 새로운 표현방식으로 네오리얼리즘 영화는 제작이 되었습니다. 1950년대 말에 프랑스에서는 젊은 세대가 중심이 되어 문학, 연극, 미술 등 문화 예술 각 분야에서 새로운 문화 예술 운동이 고개를 들기 시작했습니다. 이러한 예술 사조의 흐름을 '누벨바그'라고 총칭했는데, 특히 영화예술 운동에 집중되었습니다. 즉, 누벨바그는 1950년대 말 20대에서 30대 젊은 작가들의 영화예술 활동을 지칭하는 말입니다. 누벨바그 작가들은 그 당시까지의 전통적인 영화 양식을 파괴한 작품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이것이 큰 특징을 가지는데요, 스토리나 드라마보다는 현실과 카메라가 직접 만난 것을 중요시했고요, 다양한 영상의 표현 방법으로 영화의 개념을 확장시켰습니다. 누벨바그 감독들은 카메라를 통한 현실과의 만남에서 의식의 내적 변화와 현실의 다면적 모습을 발견하고자 노력했죠. 누벨바그 감독들은 잘 다듬어진 연출에 의한 카메라 위치와 각도로 찍은 장면보다는 몰래 찍은듯한 거리감을 주는 듯한 그런 것들로 더 감동을 줄 수 있다는 그런 주장을 했습니다. 그들은 값비싼 스튜디오나 방대한 조명 시설 등을 거부하고 가벼운 휴대용 카메라와 고감도 필름을 사용하는 등 제작비를 극도로 줄이고도 좋은 영화를 만들 수 있다는 증거를 제시했습니다. 누벨바그는 새롭고 혁신적인 생각을 통해 새로운 영화 언어를 만들었고요. 줄거리보다 표현에 중점을 두고 현실과 카메라의 직접적인 접촉을 통해서 영화를 선보이게 되죠. 예컨대 즉흥 연출, 장면의 비약적 전개, 완결되지 않은 스토리, 영상의 감각적 표현 등에 의하여 종래의 영화 개념을 많이 바꾸어 놓았습니다. 루이 말의 〈사형대의 엘리베이터〉(1957)와 〈연인들〉(1958), 클로드 샤브롤의 〈사촌들〉 (1959)과 〈이중의 열쇠〉(1960), 알랭 레네의 〈24시간의 정사〉(1959), 프랑수아 트뤼포의 〈어른들은 알아주지 않는다〉(1959)와 〈400번의 구타〉(1959), 장 뤼크 고다르의 〈네 멋대로 해라〉(1960) 등이 대표 작품입니다. 영화 비평 잡지 ≪카이에 뒤 시네마≫ 중심의 비평가 동인들이 주류를 이루었습니다. 누벨바그 감독들은 시네마테크에서 예술영화 작품을 공부하며 주관적인 영화 만들기에 집중한 특징이 있고요, 짧은 활동이지만 세계 영화계에 끼친 영향은 매우 컸습니다.
뉴 아메리칸 시네마
뉴 아메리칸 시네마는 1960년대 미국의 언더그라운드 또는 실험 영화 운동을 가리키는 용어입니다. 1960년대 라이오넬 로고 신 , 피터 보그다노비치, 요나스 메카스, 셜리 클라크, 로버트 프랑크를 비롯한 독립 영화감독, 제작자들은 '아메리칸 뉴시네마 그룹'이라는 단체를 결성합니다. 그들은 성명서에서 할리우드 영화에 대한 일종의 도전장이었습니다. “우리는 허위로 가득하고 세련되며 호화로운 영화를 원치 않는다. 우리는 거칠고 세련되지 못하지만 살아 있는 영화를 원한다”라고 주장했습니다. 뉴 아메리칸 시네마 감독들은 영화가 관객에게 자극과 문제의식을 주기를 바랐습니다. 이에 청소년 비행 문제, 마약 문제, 시민의 권리투쟁, 경찰의 잔학상과 편협성, 빈민가를 영화의 소재로 삼았고 미국 사회의 혼란, 어두운 면을 그대로 보여 주었습니다. 급진적인 '아메리칸 뉴시네마 그룹'의 정신은 아서 펜, 마이크 니컬스, 로만 폴란스키, 리처드 플레이셔, 스탠리 큐브릭 등에 영향을 줍니다. 이 감독들은 사회문제에 단순한 결론을 제시하는 주류 할리우드 영화에 비판적이었기 때문에 아메리칸드림의 좌절을 주제로 한 영화 만들기에 동참하였습니다. 뉴 아메리칸 시네마의 붐을 알리는 효시는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 〈이지 라이더〉입니다. 아서 펜 감독의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1967)는 공황기 두 남녀의 범죄 행각을 통해 타락한 미국 사회를 고발한 화제작입니다. 데니스 호퍼 감독의 〈이지 라이더〉(1969)는 마약을 판 돈으로 국토를 횡단하는 히피를 통해 미국 사회의 불안과 허무를 보여줍니다. 두 작품은 흥행과 비평가 찬사라는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았습니다. 두 편의 영화에서 뉴 아메리칸 시네마의 주인공은 주로 주변 계층이나 소외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자신과 타인 모두로부터 소외돼서 구시대적 가치와 새로운 것의 불확실성을 모두 거부하고 복잡한 존재로 묘사되었습니다. 시드니 폴락의 〈그들은 말을 쏘았다〉(1969), 샘 페킨파의 〈와일드 번치〉(1969), 로버트 앨트먼의 〈매쉬〉(1970), 스티븐 스필버그의 〈대추적〉(1971) 등이 이 시기의 대표작들입니다.
다큐멘터리 영화
다큐멘터리 영화는 현실을 포착하는 데 사실적 구성과 그 구성을 지배하는 작가의 눈, 그리고 작가가 현실을 보는 방법과 테마를 취급하는 방식이 기본이었습니다. 따라서 기록된 사실을, 보는 방법과 테마의 조립에 의해 비로소 진실은 만들어진다고 생각해 온 것입니다. 그런데 '시네마베리테' 파들은, 첫째로 카메라의 눈을 믿고 또한 중요시하며, 사실의 추구에 의해 진실을 사실 속에서 발견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이 계열의 대표적인 작가는 장 뤼쉬와 크리스 마르케르인데, 뤼쉬는 원래 인류학자로 당초 16mm 카메라를 들고 아프리카 등 흑인들의 생활을 연구용으로 기록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러한 미지의 세계 연구용에서 차츰 도시 속 인간에게도 카메라를 맞추어 1960년에 만든 것이 〈인간 피라미드〉와 〈한여름의 기록〉입니다. 이 작품들은 일상성 속에서 현대인의 내면세계를 탐구하는 새로운 다큐멘터리였습니다. 이들은 있는 사실에 어떤 '쇼크'를 주고 그 '쇼크'에 의해서 일어나는 일상성 뒤에 숨겨 있는 사실의 참다운 그리고 소박한 모습을 발견하려 했습니다. 카메라를 쥐고 있는 작가가 예측할 수 없는 대상의 움직임을 어떻게 포착하며, 여기서 나타나는 즉흥적인 의식을 어떻게 표현하는가에 따라 작품의 성격이 결정되었습니다. 시네마 베리테는 영화 속 대상에 자유를 부여하고 그 대상의 움직임에 따라 즉흥성을 가급적 다양한 의식으로 포착하려고 시도하였습니다. 시네마 베리테는 '디렉트 시네마'나 '프리 시네마'로도 부르는데, 미국을 비롯한 전 세계에서 새로운 다큐멘터리 정신으로 확장되어 갔습니다. 영화를 보며 영화 속 노래와 음악을 직접 들을 수 있었고 관객들이 사랑하는 대스타의 입에서 직접 대사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스타들의 목소리를 듣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열광을 했고요, 또 영화를 보면서 다양한 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놀라운 경험이었습니다. 전통적인 영화 양식을 뛰어넘어서 다양한 시도들을 했습니다. 스토리나 드라마에 너무 의존하기보다는 새로운 영상 표현 방법으로 영화의 개념을 확장시켰습니다. 예를 들어, 누벨바그의 대표적 감독인 장뤼고다르의 〈네 멋대로 해라〉에서 점프컷을 사용해서 큰 변화를 이뤘고요. 다양한 카메라 움직임을 과감히 사용했습니다. 기존 영화 제작에 도전적인 질문을 던지게 된 것입니다. 영화사를 요약하자면, 영화의 탄생(1895∼1905), 영화의 성장(1906∼1915), 무성영화 시대(1916∼1926), 유성영화 시대 도래(1927∼1935) 영화 산업화 시대(1936∼1945), 네오리얼리즘 시대(1946∼1956), 누벨바그의 새로운 영화기(1957∼1966), 뉴 아메리칸 시네마의 시대(1967∼1975), 뉴저먼 시네마(1976∼1985) 포스트모던 영상 시대(1986∼1995), 디지털 영화 시대(1995∼2008), 입체 영화와 뉴미디어 시대(2009∼)로 발전했고요. 영화는 계속해서 발전하고 있습니다. 영화의 역사는 아직도 진행 중입니다. 영화의 표현기법에 따라 또 다른 시선, 다양한 시선으로 만들어지고 그 역사는 계속해서 지속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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